본문 바로가기
한자마인드맵

한자에 대하여

by 제세안민 2023. 5. 5.

한자는 중국 고대 황하문명에서 발상한 표기문자. 4대 문명에서 사용된 고대 문자 중 현용되는 유일한 문자 체계이다. 또한 가장 글자 수가 많은 문자 체계이며, 그 수는 약 10만 자에 이른다. 고대부터 주변 여러 국가와 지역에 전해져 한자 문화권을 형성하여 언어뿐만 아니라 문화상에 큰 영향을 주었다.

현대에는 중국어, 일본어, 조선어(한국어), 광서성 동흥시에 있는 경족이 사용하는 베트남어 기술에 사용된다. 현재 조선어에서는 거의 사용되지 않고 있다. 20세기 들어 한자문화권 내에서도 중국어와 일본어 이외에는 한자 표기를 거의 폐지했지만, 여전히 약 15억 명이 사용하여 약 50억 명이 사용하는 라틴 문자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사용자 수가 많은 문자 체계이다.

1) 한자의 특징

라틴 문자로 대표되는 알파벳이 하나의 음가를 표기하는 음소문자인데 반해 한자는 일반적으로 각각 개별적인 의미를 가지며 음절에 대응하고 있는 형태소이다. 그러나 현대 중국어 단어는 대부분 2개 이상의 한자를 조합한 것으로 되어 있다.

본래 한 글자가 하나의 뜻을 나타내는 것만을 중시하여 표의문자로 삼았는데, 이는 고대 중국어의 1음절이 하나의 의미를 나타내는 고립어적 언어구조에서 유래한 것으로 정확하게는 음과 의미 양자를 표기하는 표어문자이기 때문이다. , 한 글자가 한 단어를 나타내는 것이다. 이러한 한자의 특징 때문에 전통적인 문자학에서는 한자를 형태·소리·3요소로 분석해 왔다.

그러나 하나의 음을 가진 단어가 파생 의미를 낳고, 한 글자가 여러 개의 (전혀 정반대이거나 무관하여 하나의 글자 의미로는 상상할 수 없는) 글자 뜻을 갖고 있거나 읽는 소리가 바뀌어 여러 글자 소리를 가지고 있는 경우도 있다. 또한 외래어를 표기하는 경우 등 단순히 소리를 나타내기 위해 만들어진 한자도 있고 글자 의미를 가지지 않는 경우도 있다. 글자 의미의 유무를 불문하고 1음절을 나타내는 문자라는 점에서 음절문자인 일본어 가다가나와는 가까운 관계에 있다고 볼 수 있다.

2) 한자문화권 국가

일본, 조선. 류큐왕국, 베트남은 고대 중국에서 한자를 수입해 사용했다. 또한 싱가포르, 말레이시아처럼 중국에서 이주한 사람들이 많이 살면서 한자를 사용하는 지역이 있다. 이러한 한자를 사용하거나 사용하던 주변 국가들을 포괄하여 한자 문화권이라고 부른다.

일본에서는 한위노 국왕 도장이나 고분시대 이나리다이 1호분에 매장되어 있던 철검 명문이 일본의 초기 한자 사례로 여겨지고 있으며, 또 최근의 연구에서 한반도를 경유하여 전래된 문자·사용 방법이 존재할 가능성이 지적되고 있다.

현재 한자는 중국·대만·일본에서 일상적으로, 한국·싱가포르 등에서 한정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20세기 후반 각국 정부의 정책에서 한자를 간략화하거나 사용 제한 등을 했기 때문에 현재는 이들 국가에서 완전히 문자 체계를 공유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또 북한, 베트남처럼 한자 사용을 공식 중단한 나라도 있다. 그러나 한자는 사용하지 않아도 한자와 함께 유입된 어휘가 각 언어의 어종으로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한자음은 지역·시대에 따라 변화한다. 그러나 연원이 되는 중고음에서 각 지역의 음운 변화에 따라 규칙적으로 변화하고 있어 유추 가능한 공통성을 지니고 있다. 또한 지역에 따라 발음이 다를 경우에도 같은 글자로 나타낼 수 있기 때문에 국경을 넘어 한자를 사용한 필담으로 소통하기도 한다. 글자 모양의 복잡성 때문에, 손으로 쓰는 경우에는, 잘못 쓴 것이나 생략 등에 의해서 글자체는 적지 않게 변화해 왔다. 그리하여 변화된 글씨체 중 어느 정도 범위에 정착한 속자가 각국에서 정자로 선정되어 글자 모양에 약간의 차이를 보이는 경우가 있다. 또한 지역음이나 지역 특유의 자의를 나타내기 위한 국자·방언자나 이체자도 많이 만들어져 왔다.

3) 한자의 역사

전승에 의하면 중국 문자의 발상은 황제시대의  창힐이 모래사장을 거닐던 새의 발자국을 보고 발자국에서 새의 종류를 알 수 있듯이 개념도 똑같이 표현할 수 있음을 깨닫고 만든 문자라고 한다. 또한 역경에는 성인이 한자를 만들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고고학적으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한자는 은나라에서 점의 일종인 복()의 결과를 쓰기 위해 사용된 문자이다. 이를 현재 갑골문자(귀갑수골문)라고 부른다. 갑골문 이전에도 문자다운 것은 존재하였으나, 이는 한자와 계통을 같이 하는 것이 있는지 확실하지 않다. 당시 복()은 거북이 등딱지나 소의 어깨뼈 등 뒤쪽에 작은 구덩이를 파고 불에 구워 달군 금속막대(청동제라 함)를 꽂는다. 잠시 꽂은 채로 두면 뜨거워진 앞면에 균열이 생긴다. 이 균열의 형태로 길흉을 보는데, 그 복(卜)을 한 갑골에 복(卜)의 내용과 결과를 새긴 것이다.

현재 존재하는 가장 오래된 한자는 은허에서 발굴되는 갑골 등에 새겨진 갑골문자이다. 그 내용은 은나라 22대 무정 때부터 쓰여진 것이기 때문에, 그 이전에는 신석기시대 유적 등에서 발견되는 기호는 있어도 문자로 사용할 수 있는 한자가 만들어진 것은 기원전 1300년경의 일이라고 생각된다. 이 갑골문자는 사물이 보이는 그대로를 그리는 상형문자였으며, 당시 갑골문자는 그림에 가까운 양상을 갖는 것도 많았다. 한편, 모종의 사태를 표현하는 동사나 형용사의 문자도 존재했다. 예를 들면, 립(立)의 원형인 사람이 지면을 나타내는 가로 막대 위에 쓰여진 글씨(지사 문자), 여성이 아이를 달래는 모습으로부터 호(好), 사람이 나무 아래에 있는 모양으로부터 휴(休)등의 글자(회의 문자)도 이미 포함되어 있었다. 게다가 동음의 단어를 이미 어떤 다른 글자로 나타내는 대용자도 있고, 예를 들어 새의 날개를 나타내는 「익(翼)의 원형은 동음으로 다음을 나타내는 단어로 유용되어 이것이 후에 「익(翌)」이 되었다. 가장 오래된 한자에는 좌우나 상하가 반전된 것이나 그림이나 기호에 가까운 부품이 붙어 있는 것 등, 현재의 상식으로는 생각할 수 없는(당연히 현재는 사용되지 않는) 한자가 존재한다. 그 후 청동기에 주조된 금문이라는 글자가 등장하였다. NHK 스페셜 중국 문명의 수수께끼 제2집 한자 탄생에서는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문자가 상거래 기록에서 비롯되고 있는데 반해 정치 방침을 결정하기 위한 점의 용도로 뼈(지금까지 14,000구의 은나라 제물이 희생된 인골이 출토)에 새기기 위해 사용되기 시작한 한자는 문자로서는 극히 특수한 뿌리였다고 하고 있다. 예를 들어 '백(白)'은 인간 두개골의 흰색에서 유래한 상형문자이다. 이처럼 귀신과 왕을 연결하기 위한 수단으로 초기 한자는 시작되었다.

주나라 때는 외교나 상거래 등 여러 용도에 한자가 사용되면서 지금까지의 종류만으로는 부족해졌다. 그래서 많은 새로운 한자가 만들어졌다. 중국에서는 맑고 깨끗한 모습을 '세이(: tseng)'라고 부르고 새싹이 우물가에 돋아난 모습에서 파란색으로 이어지는 상형문자를 사용했다. '세이()'라는 발음과 문자 '파랑'은 형용사뿐만 아니라 '맑고 맑은' 것을 부르는 여러 명사에도 사용되었는데, 이들에게도 각각의 한자가 할당되게 되었다. 물이 '세이()'라면 '()', 햇빛이 '세이()'라면 '()' 등이다 .이러한 한자의 한 무리를 한자가족이라고 한다. '()(liuan-luan)'도 단책을 갖춘 모습에서 발하여 갖춘 것을 나타내는 상형문자인데, 이 역시 수레가 모이면 윤(), 인간관계가 갖추어지면 윤(), 이론이 정연하면 논()이라는 한자가 만들어졌다. 이와 같이 음표에 해당하는 '()', '()' 등과 의미의 유별을 나타내는 뜻표가 결합된 '형성문자'가 발달하였다. 서기 100년경 후한 허신이 저술한 설문해자는 중국 최초의 자서로 9,353자의 한자에 대해 성립을 해설하고 있는데, 이 중 약 80%는 형성문자이다. 이러한 문자 형성의 배경에는 중국에서는 사물을 감성적으로 파악해 틀에 끼워 넣는 습관이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도 한다. 이 때문에 음소문자나 단음문자를 만들어내는 경향이 억제되었다고 생각된다.

주나라가 혼란의 시대를 맞이하면 한자는 각지에서 독자적인 발전을 하게 된다. 그 후 의미·형태 모두 추상화가 진행되어 춘추전국시대에 이르러 지방마다 통용되는 글자체가 다른 사태가 발생하였다. 그리고 천하를 제패한 진시황이 글씨체 통일에 착수하여 태어난 것이 소전이다. 진나라는 서주의 고지를 본거지로 한 것이며, 그 문자는 주나라 때부터 내려온 것이었기 때문에 계통성이 유지되었다고 할 수 있다.

소전은 존엄하고 난해한 서식이었다. 진나라, 그리고 후대에 이르러 하급 관리를 중심으로 사용하기 어려운 소전의 장식적인 부분을 생략하고 곡선을 직선화하는 변화가 일어나 이것이 예서가 되었다. 모필로 쓰는 목간이나 죽간에 쓰는 한자로 시작된 예서는 책에서 비석에 새겨지는 글자까지 이르렀다. 이 예서를 휘갈겨 쓴 것은 '초예(草禮)'라 불렀는데, 이윽고 이것이 초서가 되었다한편, 예서를 더욱 직선적으로 쓴 것이 해서로 발달하였고, 이를 더욱 허물어 행서가 생겨났다.

또한 예서에서 해서가 생겨 그것을 부수는 형태로 초서와 행서가 만들어졌다는 설이 있으나 현재 이 견해는 정설에서 벗어나 있으며 종합백과사전 포플러디아 제3에서도 오류로 수정되고 있다.

육조부터 당나라 때에는 서사가 널리 퍼져 개인이나 지역에 의한 독특한 붕괴가 발생하게 되었는데, 과거제에서는 정자라는 유서 깊은 한자가 요구되었으나 일반 서민에서는 통자나 속자라고 불리는 한자가 많이 사용되었다송나라 때에는 수공업자나 상인 등 문자를 일에 쓰는 층이 대두되면서 속자가 폭넓게 사용되었다더욱이 목판기술의 발전으로 해서에 인쇄서체가 생겨났고 송조체라 불리는 서체가 탄생하였다. 명대에서 청대에 걸쳐 강희사전으로 대표되는 명조체가 확립되었다.

현재 서적이나 컴퓨터 문서 등의 인쇄에 사용되고 있는 한자 서체는 명나라 때 확립된 명조체가 중심이다. 이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후한 말기에 확립된 해서에 도달한다.

현대 중국에서는 더욱 간소화된 간체자가 사용된다()''와 같은 대담한 생략, '()'''과 같은 동음 대체, '()''와 같은 초서체 차용부터 '()''과 같은 옛 글자의 부활까지 있다기본적으로 10획 이하로 줄이기 위해 민간에 유포됐던 문자 외에 투서를 모아 문자개혁위원회가 선택하는 것으로 결정됐다.

 

 

 
반응형